EXHIBITIONS
All the Light We Cannot See
Sunny Kim
2025. 2. 22 - 3. 15




We have long used light to reveal things
But it is in the thing-ness of light
That light itself becomes the revelation
(…)
This is the light that’s passing through
Just beneath that usually seen
Who owns it? You who look
Not to be held, but known
- from <Speaking for the Light> by James Turrell
우리는 오랫동안 빛을 통해 세상을 밝혀왔다
그러나 우리가 빛의 실재성을 감각할 때
비로소 빛 그 자체가 드러나는 법
(…)
이 빛은 그저 지나가는 빛
평소 우리가 보는 그 빛 바로 아래 스며든
이 빛은 누가 소유하는가? 이를 관찰하는 바로 당신
붙잡을 순 없지만, 감각할 순 있는
- 제임스 터렐의 <빛을 대신해 말하다> 중
우리가 빛을 마주하는 여러 순간들 중 그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고 고스란히 감각한다고 할 수 있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우리의 기억 속에 빛에 대한 감각이 선명한 장면이나 잔상으로 머물게 되는 경우는 또 몇이나 될까. 우리는 늘 빛을 통해 보지만, 사실 빛 자체를 보는 것은 아니다. 빛은 우리 일상 속 거의 모든 공간에 항상 실재하고 있지만, 그러한 만연함으로 인해 우리는 오히려 그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고 줄곧 망각해 버리곤 한다.
그렇기에 빛을 단순히 작업이 보여지기 위해 필요한 매개체 혹은 수단이 아닌 작업 자체의 대상이자 주제, 재료로 대하는 김선희의 작업관은 작가의 작업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매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빛이 표현되는 다양한 현상과 모습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선명했던 한 순간의 감각이 기억으로 전환되어 간직되는 과정 내내 함께하는 빛의 실재성을 연구한다. 달빛이 햇빛으로 바뀌는 시점에 허공을 올려다보며, 작업실 창문 넘어 들어온 무지개를 한지에, 아크릴 판에 담아보며, 암흑 속 홀로 켜 진 촛불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길어지고 짧아지는 벽에 드리워진 햇살의 모양과 각도를 표시해보며, 작가는 남다른 관심으로 빛을 관찰해 왔고, 빛이 표현되는 현상을 집요하게 채집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 및 표본화 작업에는 다양한 형태의 셀 수 없이 많은 기록물들이 수반되었다. 작가는 평소 습관처럼 빛과 관련된 일상 속 사소한 장면 하나 하나를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왔고, 작업실 벽 한 면을 수많은 생각 정리 노트와 드로잉들로 빼곡히 채워 놓았다. 작가가 마음 한 켠에 간직한 ‘과정’ 및 ‘과정을 온전히 드러내는 흔적들’에 대한 애착과 몽글몽글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 하다.
이번 아카이브 개인전 <All the Light We Cannot See>는 이러한 ‘과정’의 중요성과 소중함에 은연히 빛을 비춰보고자 기획되었다. 보통 전시를 방문한 관람객은 완성된 작품만을 보게 된다. 종종 작가나 기관의 의도대로 미완의 작품이 게시되거나, 혹은 한번 완성된 후 파괴된 상태의 작품이 공개되거나, 전시장 내에서 작업의 진행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최종 결과물이다. 김선희 작가가 지금까지의 전시를 통해 선보여 온 빛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작업들 역시, 당연히도 최종적으로 마무리된 작품의 모습이었다. 이미 불이 켜진 작품에서 관람객이 보게 되는 인조광의 색, 빛이 은은히 스며든 종이 표면의 온기, 그리고 이 모든 게 어우러진 그 시공간의 분위기 모두, 수많은 시도와 실험 끝에 작가가 공개하기로 결정한, 작업의 한 단면일 뿐이다. 처음 구상 단계부터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작업실로부터 전시 공간으로 옮겨지기를 기다리는 작품들의 모습, 관객들이 모두 다녀간 후 불이 꺼진 작품들의 형태, 그리고 전시가 막을 내린 뒤, 작품이 철수되어 다시 해체되고 보관되어 지기까지의 기록들. 어쩌면 단순히 작가 혼자만의 기억 상자 속에서 머물러 있거나 표류하고 있을 순간들을 공개하며, 완성된 작품 못지않게 값진 그 과정 자체에 가치를 실어보고자 한다. 평소라면 우리가 접해보지 못했을, 작가 본인만이 작업 과정에서 마주해 온 여러 모습의 빛을 경험해 보며 전시가 지향하는 ‘과정’의 의미에 공감하기를 바라본다.
문을 열고 들어섬과 동시에 관람객은 은은한 선홍색의 빛을 머금고 천장에서부터 유려하게 떨어지는 여러 겹의 종이들을 마주한다. 한 장면, 한 순간이 겹겹이 쌓여 우리의 기억속에 저장되는 현상을 표현한 Layers of Memories 는 전시 초입부터 꽤나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삼면을 감싼 미로와 같은 첫 번째 설치 작업을 감상하며 한 발자국씩 내딛다 보면, 왼편으로 또 하나의 작품이 보인다. 트인 길을 지나 벽 끝에 설치된 Loop 는 한 장의 연속된 종이로 시작되어 마무리되는 독특한 형태이다. 위 아래 양 끝 꼭짓점 부분에서는 오렌지와 핑크를 넘나드는 색감을 관찰할 수 있고, 작품의 중앙 부분을 가로지르는 옅은 녹색 빛은 매우 오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말려진 종이 표면에 드러나는 빛과 그림자의 흐름이 마치 루프를 따라 빛이 서서히 이동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2019년 김선희 작가가 미국 거버너스 아일랜드(Governors Island)에서의 첫 개인전 때 선보인 이후 처음으로 다시 공개되는 작품이다. 중정갤러리의 특색 있는 입구 공간과 두 설치 작업이 어우러져 메인 전시장과는 완벽히 분리된 듯한 독특한 공간감을 구축하였다.
짧은 터널에서 걸어 나오듯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면 아카이브 전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왼쪽부터 시작해 시계방향의 동선을 따라 각 작품 및 구역의 디테일하고 재미있는 요소들을 관람하게 된다. 첫 번째로 전시된 A Page of Process 는 작업 과정에서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겨 책갈피 형태로 풀어낸 작품이다. 한 작업의 구상에 모티브가 된 이미지부터, 설치 도중 찍은 사진, 전시장에 디피(display)된 모습 등이 반투명 필름지에 인화되어 반쯤 넘긴 페이지 사이에 꽂혀 있다. 책 한 권을 완독하는 과정 내내 중간중간 사용되는 책갈피처럼, 작가의 작업이 지나온 길을 여러 시점에서 접해 볼 수 있다. 이어서 전시된 A Line of Process 는 같은 의미의 사진과 이미지를 이번엔 모빌 형태로 디피한 방식이다. 지난 전시와 관련된 장면들이 한 줄 씩 묶여 있으며,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와 더불어 위아래로 찬찬히 살펴보는 방식이 오밀조밀하다.
이어진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여러 개의 평면 캔버스 작품들은 작가가 기존에 진행해 오던 글라스 파우더 페인팅 시리즈를 모아 전시한 Some Pieces of Process 이다. 마치 작업실 한 켠, 혹은 수장고에 겹겹이 포개어 기대어 진 듯한 작품들의 모습에서, 전시에 선택되기 전 보관 단계의 장면이 떠오른다. 이 시리즈는 관객이 이동함에 따라, 혹은 조명이 비춰진 부위와 정도의 차이에 따라 은빛으로 반짝이는 붓질의 결과 질감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 중앙 쪽의 나무 크레이트는 아카이브 존으로, 지난 전시 관련 리플렛, 작가가 언급되었던 각종 매체의 자료, 실제 작업의 소형 목업(mock-up) 등 다양한 기록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창가 쪽 공간에는 작가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해보고자 하였다. 창을 따라 매달린 각종 재료들이 빛을 머금고 반사하는 정도를 관찰해 볼 수 있고, 벽 면을 빼곡히 채워 부착된 기록물들과 샘플들을 통해 작가의 작업 환경을 엿볼 수 있다. 책상 위 물품들, 종이 박스 안 조명들, 말려 있는 종이들 등 곳곳에 존재하는 소소하고 재미있는 요소들을 하나씩 찾아보길 바란다.
전시장 오른쪽 구석에 상영되는 영상은 작가가 매일 작업과 관련된 순간들을 영상으로 남겨보고자 진행하였던 By-Today 시리즈를 합쳐 달력 형태의 포맷으로 보여주는 A Month of Process 이다. 천장에서 자연광이 내리쬐는 벽면에 전시된 작품은 기존의 조명을 제거하고 흰 종이만을 설치하여, 불이 꺼진 뒤 작품의 모습과 자연광이 작품 표면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동시에 체험해 볼 수 있다. 그 다음 동굴을 연상시키는 공간 안에는 작가의 기존 프리즘 작업인 Wave 가 전시되어 있다. 기존에 배치된 광원 외에 준비된 손전등으로 관객이 직접 광원을 하나 더 추가하여 다방면으로 반사되는 빛의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마지막 A Slice of Process 역시 액자와 모빌 형태의 앞선 두 작품과 같이 과정의 기록을 담은 사진들을 투명 아크릴 케이스에 보관하듯 디피한 형식이다. ‘모티브,’ ‘설치 전/후,’ 그리고 ‘on/off’의 세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으며, 양면으로 각 항목에 해당하는 한 작업에 대한 두 가지의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찰나’ - <All the Light We Cannot See>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내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던 단어이다. 이번 전시 역시 필연적으로 마지막을 맞이할 것이고, 전시장의 불은 꺼지게 될 것이다. 설치된 작업은 다시 분해되어 냉기를 머금은 말아진 종이의 형태로 되돌아갈 것이며, 전시된 기록물들은 하나씩 상자 안에 다시 포개어 쌓여질 것이고, 고스란히 옮겨 온 “Studio Sunny Kim” 또한 경기도 안성의 공기와 햇빛을 머금은 본래의 공간으로 돌아가, 갤러리의 창가 공간엔 다시금 새하얀 벽과 평창동의 풍경을 담은 통창만이 남게 될 것이다. 전시의 끝이 서서히 다가올 때면 지난 몇 주, 몇 달 간의 고민이 결국 ‘찰나’로 지나가 버렸다는 생각에 적지 않은 헛헛함과 아쉬움이 밀려온다. 작가 본인에게도, 어쩌면 지나온 몇 년간의 작업 및 기억의 결집이 다시금 흩어져 버린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서성거릴 것이다.
전시를 돌아보며 머물렀던 몇 분, 혹은 몇 시간의 순간들도 관람한 이들에게 ‘찰나’의 순간으로 회상되며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을까. 아마도 작가의 빛을 대하는 태도가 많은 이에게 인상깊게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주변에서 빛이 표현되는 여러 모습과 현상에 조금이나마 더 관심을 기울여 이를 인지하고, 포착하고, 감각해보려는 시도가 관람객의 마음 한 켠에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글의 시작에 함께한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시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금 빌려와 본다. “관찰하는 자의 것인, 붙잡을 순 없어도 감각할 순 있는” 이 빛을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여느 때처럼 작업실에서 빛을 탐구하던 김선희 작가의 얼굴엔 은은한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들어오는 길에 설렘, 긴장, 혹은 기대로 마주한 설치 작업의 사뭇 낯설었던 분위기와 공기가 나가는 길엔 한결 편안한 온기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이번 전시를 관람한 이들 모두의 기억 한 켠에 자리 잡을 ‘과정’의 소중함이 따뜻한 선홍색의 빛처럼 오래도록 은연히 빛나길 바라본다.
전시 기획/서문 | 최재우